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철기 시대 (문단 편집) == 세계사 == 사실 이미 [[청동기 시대]]에도 인류는 철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이때는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제철 기술이 없어 [[운석]]에서 나온 [[운철]]을 가공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량생산도 불가능해서 자주 쓰이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강철|Steel]] 이라는 명칭은 원래 운철(隕鐵 meteoric iron, star metal)을 말하는 고어에서 나온 말. [[운철]]은 철성분의 운석(철질 운석)을 말한다. 철제련법이나 강철제강법이 발명되기 전에는 이런 운철이 질좋은 강철을 입수할 수 있는 유일한 출처로 철제 검 등에 쓰였고 제철 기술이 나온 후에도 고급 철기 재료로 쓰였다. 초기 제철 기술로는 탄소가 적은 강철을 만들 수가 없었는데 운철은 불순물이나 탄소가 적어 강철에 가까워 강도가 높고 또 니켈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녹이 잘 슬지 않아 고급 철기로 황제나 왕의 검을 운철로 만들기도 했다. 3000년 전의 투타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철제 칼이 일반 철이 아닌 운철을 녹여 만든 것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17세기 인도 무굴제국 황제의 검도 운철로 만든 운철 검. 보통 인터넷에서 철기 시대라고 하면 이런 것까지 생각해서 기간을 잡는 경우가 많은데, 위에도 말했듯 철기 시대라는 것은 철을 사용한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고고학계의 관습적인 구분이다. 과거에는 인류 최초의 철기가 [[히타이트]]나 [[바다 민족]]에서 시작했다고 보았고 실제로 히타이트는 이른 시기부터 철기를 사용한 문명인 건 맞다. 하지만 히타이트가 철기라는 신기술을 최초로 익혀서 이걸로 주변 문명을 압도하고 강대국이 되었다는 식의 해석은 지금은 온갖 반박을 당하고 있는 학설이다. 히타이트의 제철 방식은 청동기 시대의 운철 제련 수준에 머물렀다고 보는 것이 최근의 연구이며, 그나마도 [[풀무]]가 없어서 특정 시기에 수도 [[하투샤]] 근처에서 부는 자연풍을 활용한다는 대단히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만들 수 있었고, 그 철기를 가지고도 아직 [[청동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람세스 2세]]의 이집트군과 [[카데시 전투]]에서 맞붙었지만 압도까지 하진 못했다. 바다 민족 역시 그들의 정체나 영향력에 대해서 최근 학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로. 최근의 학설은 어느 날 드라마틱한 사건에 의해 청동기가 폭삭 망하고 철기가 갑작스럽게 들어선 것이 아니라 근동에서 청동기 국가들의 몰락은 전쟁이나 기후 변화, 자연 재해, 전염병 등의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며, 철기 시대의 등장은 주조틀의 보급과 제련 기술의 성장, 그리고 무역의 발달로 각각의 문명권에서 기존부터 존재하던 철기가 서서히 발전했다고 보는 추세다. 플라스틱이 등장했다고 해서 철제 도구들과 철강산업이 한순간에 몰락한 게 아닌 것처럼 청동기와 철기도 상당기간 '''공존했다는 것'''이다. 초기의 철기는 아직 청동기의 사용이 더 우세한 시대였다. 생산되는 철기가 기술 부족으로 인해 주조 철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주조 철기는 청동기에 비해 딱히 강도에서 유리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당시 철은 [[탄소]] 함량이 과다하고 불순물이 많아 [[인성(동음이의어)#s-2|인성]]이 나빴기 때문에 충격을 받으면 '''깨졌다![* 창작물의 사례지만, 드라마 [[주몽(드라마)|주몽]]에서는 [[부여]]에 기술고문 자격으로 파견된 [[한나라]]의 대장장이들이 부여제 철검을 모루에 내리치자, 철검이 부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실제 부여와 한나라의 제철 기술 수준의 격차는 나쁜 의미에서 도토리 키재기 수준에 불과했다만(...), 어쨌거나 당시의 철검은 금속이라서 가공이 쉽다는 것말고는 딱히 뛰어난 구석은 없었다.]''' 청동은 부러질 순있어도 산산히 깨져나가진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기원전 4세기까지는 철기가 청동기를 질에서 압도했던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원전 5세기에도 스파르타 중장보병의 갑주는 여전히 청동 재질이었고, 동시기 아테네조차도 황동제 투구를 썼다. 그러나 청동의 원재료인 구리는 의외로 산지와 산출량이 적었기 때문에 철광석 제련 기술이 발달하자 물성이 떨어지지만 광석이 훨씬 흔한 철이 상대적으로 값싸게 대량으로 보급되어서 양적으로 청동을 압도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원전 1세기에 들면 철제 무기가 청동제 무기를 완전히 대체하게 된다. 어쨌든 [[중동]]에서 나타난 최초의 철기는 점차 주변국으로 확산되는데, 대체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기원전 10세기, [[이집트]]는 기원전 7세기, [[유럽]]은 이보다 늦은 기원전 5세기경에 본격적인 철기 시대가 시작하였다. 동양에서는 [[중국]](中國) [[상나라]]의 유물로 날 부분을 철로 쓴 청동 도끼가 가장 오래된 예가 되는데, 철기가 나타나는 것은 BC 600년경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이고, 본격적으로 보급되는 것은 [[진(통일왕조)|진]](秦), [[한나라|한]](漢)대에 이르러서이다.[* (고고학 사전, 2001. 12., 국립 문화재 연구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